프란츠 베켄바워 (Franz Beckenbauer) – DF/Sweeper, 독일

'황제' 프란츠 베켄바워, 그는 어떻게 수비수의 개념을 바꾸었을까요? '리베로' 포지션을 창시해 축구 전술에 혁명을 일으키고,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을 우승한 그의 독보적인 축구 인생을 확인하세요.

 수비를 예술로 만든 리베로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  – DF/Sweeper, 독일


기본 정보

  • 전체 이름: 프란츠 안톤 베켄바워 (Franz Anton Beckenbauer)

  • 국적: 독일

  • 포지션: 리베로 (Libero), 중앙 수비수 (DF)

  • 별명: Der Kaiser (데어 카이저, 황제)


선수 경력 (주요 클럽)

  • FC 바이에른 뮌헨 (1964-1977)

  • 뉴욕 코스모스 (1977-1980, 1983)

  • 함부르크 SV (1980-1982)


플레이 스타일 요약

  • '황제(Der Kaiser)'라는 별명처럼, 우아하고 기품 있는 플레이로 그라운드 전체를 지배했던 선수이다.

  •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후방에만 머무르지 않고, 직접 공을 몰고 나와 공격을 전개하는 '리베로(Libero)' 포지션을 창시하고 완성시킨 혁명가이다.

  • 뛰어난 전술안과 경기 전체를 읽는 넓은 시야, 그리고 공격수에게 정확하게 연결되는 롱패스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소속팀과 국가대표팀 모두에서 주장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했다.


핵심 커리어 하이라이트

  •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 우승: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주장으로 우승했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감독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축구 역사상 마리우 자갈루, 디디에 데샹과 함께 단 3명만이 달성한 대기록이다.

  • 수비수로서 발롱도르 2회 수상 (1972, 1976): 수비수 포지션으로 발롱도르를 두 번이나 수상하며, 수비수도 경기 전체를 지배하는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 바이에른 뮌헨의 전설: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고 유러피언컵 3연패(1974, 1975, 1976)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클럽의 황금기를 열었다.

  • 독일 대표팀의 영웅: 1972년 유로 대회 우승과 1974년 월드컵 우승을 이끌며 70년대 독일 축구를 세계 최정상에 올려놓았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이자,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을 정복한 불세출의 전설이다. 그는 수비수라는 포지션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우아하고 지적인 플레이로 그라운드를 지휘하며 '황제(Der Kaiser)'라는 칭호를 얻었다. 프란츠 베켄바워는 독일 축구, 나아가 세계 축구의 역사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인물 중 한 명이다.



'리베로(Libero)'의 창시자, 카이저의 탄생

  베켄바워 이전의 수비수는 상대 공격수를 막는 임무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베켄바워는 이 틀을 깨부수었다. 그는 최종 수비 라인보다 한발 뒤에 자유롭게 위치하는 '리베로(Libero, 이탈리아어로 '자유인')' 역할을 창시하고 완성했다. 그는 단순히 수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공격을 차단한 뒤 직접 공을 몰고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수행했다.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라운드 전체를 꿰뚫어 보는 시야와 정확한 패스, 그리고 우아한 볼 컨트롤은 그를 '후방의 플레이메이커'로 만들었다. 마치 황제처럼 기품 있고 권위 있게 그라운드를 지배하는 그의 모습에 팬들은 '카이저(Kaiser)' 라는 별명을 헌정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황금기를 이끌다

  베켄바워의 등장은 바이에른 뮌헨의 역사를 바꾸었다. 그가 입단할 당시만 해도 2부 리그에 머물던 바이에른 뮌헨은 베켄바워를 중심으로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 등과 함께 황금세대를 구축했다. 그는 팀을 분데스리가의 절대 강자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 무대에서도 정상에 올려놓았다.

특히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유러피언컵(現 챔피언스리그) 3회 연속 우승이라는 위업은 바이에른 뮌헨을 세계적인 명문 클럽의 반열에 올려놓은 결정적인 업적이다. 이 모든 성공의 중심에는 리베로로서 수비와 공격을 모두 지휘한 베켄바워가 있었다.



선수로서, 정상에 선 월드컵과 유로

  베켄바워는 서독 대표팀의 주장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그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안방에서 열린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역사를 썼다.

당시 결승 상대는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던 네덜란드의 '토털 풋볼'이었다. 세계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두 천재의 맞대결에서, 베켄바워의 서독은 끈끈한 조직력으로 네덜란드를 2-1로 꺾고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에 앞서 유로 1972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그는 선수로서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했다. 개인적으로도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발롱도르를 두 차례(1972, 1976)나 수상하며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임을 증명했다.



감독으로서, 다시 한번 세계를 제패하다

  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룬 그는 감독으로서도 정상에 섰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서독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지만, 디에고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에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4년 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그는 다시 한번 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만났다. 이번에는 그의 서독이 1-0으로 승리하며 완벽한 설욕과 함께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베켄바워는 브라질의 마리우 자갈루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인물이 되었다. (이후 프랑스의 디디에 데샹이 세 번째로 기록을 달성했다.)



시대를 초월한 영향력과 유산

  2024년 1월, 그는 향년 78세로 영면에 들었지만 그의 유산은 축구계에 영원히 남아있다. 그는 단순히 뛰어난 선수를 넘어, 축구의 전술적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가였다. 수비수가 경기를 어떻게 지배할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보여주었고, 그의 '리베로' 시스템은 후대의 수많은 팀과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결론적으로 프란츠 베켄바워는 선수, 감독, 행정가로서 독일 축구의 모든 것을 이룩한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황제'라는 칭호와 함께, 축구가 힘과 기술뿐만 아니라 지성과 품격의 스포츠임을 증명한 가장 위대한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다.




주요 업적 및 수상 내역

[선수로서]

  • FIFA 월드컵 우승 1회 (1974) / 준우승 1회 (1966)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유로) 우승 1회 (1972) / 준우승 1회 (1976)

  • 발롱도르 2회 (1972, 1976)

  • 유러피언컵(챔피언스리그) 우승 3회 (1974, 1975, 1976)

  •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5회 (바이에른 뮌헨 4회, 함부르크 SV 1회)

  • FIFA 월드컵 베스트 영플레이어상 (1966)

[감독으로서]

  • FIFA 월드컵 우승 1회 (1990) / 준우승 1회 (1986)

  • 프랑스 리그 1 우승 1회 (1990-91)

  • UEFA컵 우승 1회 (1995-96)

  •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1회 (199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