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초창기, 원조 슈퍼스타들

축구의 여명기, 1920~30년대를 지배한 원조 슈퍼스타들을 만나보세요. 허버트 채프먼의 전술 혁신부터 히카르도 사모라, 주세페 메아차 등 그라운드를 빛낸 최초의 아이콘까지, 축구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을 확인하세요.

 

축구의 여명기: 시대를 지배한 원조 슈퍼스타들


축구의 초창기, 원조 슈퍼스타들




  오늘날 우리는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슈퍼스타들의 모든 플레이를 실시간으로 접하지만, 축구의 인기가 전 세계로 막 뻗어 나가던 1920~30년대, 축구의 '원조 슈퍼스타'들은 신문, 라디오, 그리고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신화가 되었다.

이들은 단순히 공을 잘 차는 선수를 넘어, 현대 축구의 전술적 기틀을 다지고, 선수 한 명이 경기를 어떻게 지배할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보여준 선구자들이었다. 축구의 초창기를 빛냈던 위대한 지략가들과 그라운드의 왕들을 만나본다.




1. 그라운드의 설계자들: 전술의 기틀을 세운 거장들

  초창기 축구는 공격수 5명을 전방에 두는 2-3-5 '피라미드' 포메이션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1925년 오프사이드 규칙이 개정되면서, 축구 전술은 혁명적인 변화를 맞이했고, 이 변화를 이끈 두 명의 거장이 있었다.

  • 허버트 채프먼 (Herbert Chapman): 현대 축구 감독의 아버지. 그는 1925년 오프사이드 규정 변화(수비수 3명에서 2명으로 완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포메이션의 센터 하프(중앙 미드필더)를 수비 라인으로 내리는 'W-M 포메이션'을 창시했다. 이는 수비 숫자를 늘려 안정성을 꾀하고, 역습을 통해 경기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아스널을 1930년대 잉글랜드 최강팀으로 만들었다.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 조명 시설을 이용한 야간 경기 등 그의 혁신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 비토리오 포초 (Vittorio Pozzo): 월드컵 역사상 전무후무한 2회 연속 우승(1934, 1938)을 달성한 이탈리아의 명장. 그는 '메토도(Metodo)'라 불리는 자신만의 2-3-2-3 시스템을 구축했다.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통해 빠르게 역습하는 이 전술은 당대 최강의 효율성을 자랑했다. 포초의 이탈리아는 단순한 강팀을 넘어, '이기는 축구'의 공식을 처음으로 증명해 보인 팀이었다.


2. 그라운드의 왕들: 시대를 풍미한 최초의 슈퍼스타

  혁신적인 전술의 등장과 함께, 그라운드 위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뽐내며 대중을 열광시킨 최초의 스타들이 탄생했다.


  • '성스러운 수호신' 히카르도 사모라 (Ricardo Zamora)   스페인 라리가의 최우수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상의 이름이 바로 '사모라상'이다. 이는 골키퍼 포지션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최초의 아이콘, 히카르도 사모라를 기리기 위함이다. 1920년대와 30년대 스페인 대표팀과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등에서 활약한 그는 '신성(El Divino)'이라는 별명처럼 경이로운 선방 능력을 자랑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화려한 유니폼과 카리스마 넘치는 플레이로 골키퍼도 슈퍼스타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증명한 인물이다.


  • '종이 인간' 마티아스 진델라 (Matthias Sindelar)   1930년대 유럽 대륙을 호령했던 오스트리아 '분더팀(Wunderteam, 경이로운 팀)'의 심장이자 두뇌였다. 가볍고 유려한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마치 종잇장처럼 피해 다닌다고 해서 '종이 인간(Der Papierene)'이라 불렸다. 최전방에 머무르지 않고 미드필드까지 내려와 경기를 조율하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현대 축구의 '펄스 나인(False 9)'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존재는 축구가 힘뿐만 아니라 지성과 창의력의 스포츠임을 보여준 상징이었다.


  • '위대한 사령관' 호세 나사치 (José Nasazzi)   1930년, 초대 월드컵의 우승컵인 줄리메컵을 가장 먼저 들어 올린 주장. 우루과이의 전설적인 수비수 호세 나사치는 '위대한 사령관(El Gran Mariscal)'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었다. 그는 단순히 수비를 잘하는 선수를 넘어, 팀 전체를 지휘하며 승리를 쟁취하는 리더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의 존재는 우루과이가 1920년대 올림픽 2연패와 초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초창기 축구 최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 '이탈리아의 아이콘' 주세페 메아차 (Giuseppe Meazza)   비토리오 포초 감독의 이탈리아를 월드컵 2연패로 이끈 최고의 공격수. 인터 밀란의 전설인 그는 뛰어난 골 결정력과 드리블, 창의적인 플레이를 모두 갖춘 완성형 스트라이커였다. 그의 위상은 오늘날 AC 밀란과 인터 밀란이 함께 사용하는 홈구장의 공식 명칭이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그는 이탈리아 축구의 첫 번째 전국구 아이콘이었다.


  • '검은 다이아몬드' 레오니다스 다 시우바 (Leônidas da Silva)   오늘날 축구의 가장 화려한 기술 중 하나인 '바이시클 킥'을 세계 무대에 대중화시킨 브라질의 슈퍼스타. '검은 다이아몬드'라 불린 그는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7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올랐다. 당시 그의 아크로바틱한 움직임과 예측 불가능한 플레이는 유럽 중심이던 축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브라질 축구가 '아트 사커'로 불리게 될 미래를 예고하는 서막과도 같았다.




  이처럼 축구의 여명기는 허버트 채프먼과 비토리오 포초 같은 위대한 지략가들이 전술의 토대를 마련했고, 그 위에서 사모라, 진델라, 나사치, 메아차, 레오니다스 같은 불멸의 스타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꽃피우며 축구를 세계 최고의 스포츠로 성장시켰다. 비록 낡은 흑백 필름 속에만 그 모습이 남아있지만, 이들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하여 빛나는 축구의 '원조 슈퍼스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