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Pelé) – FW, 브라질
축구 황제, 펠레 (Pelé)
전체 이름: 이지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 (Edson Arantes do Nascimento)
국적: 브라질
포지션: 공격수 (FW), 공격형 미드필더 (AM)
별명: O Rei (오 헤이, 왕), 축구 황제
선수 경력 (주요 클럽)
산투스 FC (1956-1974)
뉴욕 코스모스 (1975-1977)
플레이 스타일 요약
'축구 황제'라는 별명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다.
스피드, 기술,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슈팅, 강력한 헤더, 창의적인 플레이메이킹 등 공격수가 갖춰야 할 모든 능력을 극한까지 갖춘 '완벽한 선수'였다.
뛰어난 운동능력과 천재적인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수많은 득점을 기록했으며, 브라질 축구의 상징인 '조가 보니투(Joga Bonito, 아름다운 플레이)' 그 자체로 평가받는다.
173cm의 크지 않은 키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점프력을 바탕으로 한 제공권 장악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핵심 커리어 하이라이트
FIFA 월드컵 3회 우승 (1958, 1962, 1970): 축구 역사상 월드컵을 세 번이나 우승한 유일무이한 선수이다. 특히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17세의 나이로 혜성같이 등장하여 6골을 터뜨리며 브라질에 사상 첫 우승을 안겼다.
1,000골 이상 득점: 공식 및 비공식 경기를 포함하여 프로 통산 1,363경기에서 1,281골을 기록,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된 전설적인 골게터이다.
산투스 FC의 전성기: 자신의 전성기를 모두 바친 산투스를 이끌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1962, 1963)와 인터컨티넨탈컵 2연패를 달성하며 세계 최강의 클럽으로 만들었다.
축구의 세계화: 선수 경력 말년, 미국 리그(NASL)의 뉴욕 코스모스에서 활약하며 미국에 축구 붐을 일으키는 등, 축구의 세계적인 대중화에 기여한 최초의 글로벌 아이콘이다.
등번호 10번의 상징: 오늘날 팀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번호 10번을 축구계의 아이코닉한 번호로 만든 장본인이다.
디에고 마라도나가 '신(神)'에 비견된다면, 펠레는 '황제(O Rei, The King)'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축구라는 스포츠의 위상을 전 세계적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글로벌 아이콘이자, 역사상 유일하게 FIFA 월드컵을 세 번이나 우승한 불멸의 기록을 보유한 선수이다. 그의 이름은 곧 축구 그 자체와 동의어로, 시대를 초월하여 위대함의 기준으로 남아있다.
17세 소년, 세계를 정복하다
펠레의 전설은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시작되었다. 브라질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5살에 산투스 FC에서 프로 데뷔를 했고, 불과 17세의 나이로 월드컵 무대에 등장했다. 당시 무명의 10대 소년이었던 그는 웨일스와의 8강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월드컵 역사상 최연소 득점자(17세 239일)가 되었다.
그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프랑스와의 준결승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개최국 스웨덴과의 결승전에서는 환상적인 2골을 터뜨리며 조국 브라질에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안겼다. 한 대회에서 최연소 득점, 최연소 해트트릭, 최연소 결승전 득점, 최연소 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운 17세의 펠레는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기며 '황제'의 대관식을 화려하게 치렀다.
산투스 FC의 황금시대와 '국보'
현대 축구 팬들은 펠레가 유럽 빅리그에서 뛴 경험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펠레가 뛰던 산투스 FC는 세계 최강의 클럽 중 하나였다.
산투스는 펠레를 중심으로 남미 대륙을 평정했고, 유럽 챔피언과의 대결인 인터콘티넨털컵에서 에우제비우가 이끌던 벤피카(1962)와 AC 밀란(1963)을 연파하며 세계 정상에 섰다. 즉, 그는 굳이 유럽으로 갈 필요가 없었다.
유럽 명문 클럽들의 수많은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그가 브라질을 떠나지 않은 것은, 산투스가 유럽 클럽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강팀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이적을 막기 위해 브라질 정부가 그를 '국보(Official National Treasure)'로 지정한 것은 그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이다.
전무후무한 월드컵 3회 우승
펠레의 위대함은 월드컵 기록에서 정점을 찍는다. 1958년의 영광 이후, 그는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도 초반에 부상으로 이탈했으나, 브라질은 가린샤 등의 활약으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펠레는 두 번째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1970년 멕시코 월드컵, 펠레는 자일지뉴, 히벨리누 등과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표팀으로 꼽히는 브라질을 이끌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4골 6도움을 기록하는 압도적인 활약으로 팀의 세 번째 우승을 견인했다. 이 우승으로 브라질은 줄리메컵을 영원히 소유하게 되었고, 펠레는 역사상 유일무이한 월드컵 3회 우승 선수라는 불멸의 금자탑을 쌓았다.
1,000골의 신화와 축구 대사
펠레는 통산 1,000골 이상을 득점한 것으로 유명하다. 친선 경기 기록이 포함되어 통계에 대한 논쟁이 있기도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그의 공식 경기 득점 기록(767골)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1969년,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페널티킥으로 1,000번째 골을 기록한 순간은 브라질 전역의 라디오로 생중계되었고, 경기가 잠시 중단된 채 축제가 벌어질 만큼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선수 말년에는 미국 뉴욕 코스모스로 건너가 당시 축구 불모지였던 미국에 축구 붐을 일으켰다. 이는 그가 단순한 선수를 넘어, 마이클 조던이나 무하마드 알리처럼 스포츠의 경계를 넘어선 20세기 최고의 아이콘이자, 축구의 세계화를 이끈 위대한 대사였음을 보여준다.
'황제'의 플레이 스타일과 유산
펠레는 단순히 골만 잘 넣는 스트라이커가 아니었다. 그는 완벽에 가까운 볼 컨트롤, 강력하고 정확한 양발 슈팅, 뛰어난 신체 능력과 축구 지능을 모두 갖춘 완성형 선수였다.
오늘날 팀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번호 10번을 축구계의 아이콘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펠레다. 1958년 월드컵 당시 우연히 배정받은 번호였지만, 그의 압도적인 활약으로 10번은 곧 '최고'를 의미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펠레는 축구라는 스포츠의 아이콘 그 자체이다. 디에고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 등 후대의 선수들이 끊임없이 그와 비교되지만, '황제'라는 칭호는 오직 펠레 한 사람에게만 허락되었다. 그의 이름과 업적은 축구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날 것이다.
주요 업적 및 수상 내역
FIFA 월드컵 우승 3회 (1958, 1962, 1970) - 역사상 유일
FIFA 월드컵 골든볼(MVP) 1회 (1970)
FIFA 월드컵 최우수 신인상 1회 (1958)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회 (1962, 1963)
인터콘티넨털컵 우승 2회 (1962, 1963)
통산 1,281골 (1,363경기, FIFA 공인)
FIFA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마라도나와 공동 수상)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선정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
TIME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펠레는 축구를 예술로 만들었고, 우리 모두는 그 예술에 감동했다.”
– 전 브라질 대표팀 주장 카푸